[배석규의 음악칼럼] 가을 하늘과 함께 ② 희망의 파란 하늘을 열다.

2023년 09월 18일
Eranos

하늘

  • 서유석

가을 하늘

  • 유리 상자

푸른 하늘(The Blue Sky)

  • 푸른 하늘(유영석)

흐린 가을하늘에 편지를 써

  • 김광석
  • 뮤지컬‘그 여름 동물원 팀’

The Sky & the Dawn & the Sun

  • 포레스텔라

아무래도 주말까지 오락가락 가을비에 젖어갈 모양입니다. 가을비 오가는 날 만나볼 친구는 고마리입니다. 대부분 식물은 자기가 좋아하는 장소에서만 자랍니다. 산꼭대기 높은 곳에서 자라는 고산식물이 있는가 하면 습한 곳에서 무리 지어 자라는 습지식물도 있습니다. 그 습지식물의 대표적인 친구가 바로 고마리입니다. 요즘 습지의 대세는 고마리와 물봉선입니다.

물 근처나 습지에 살면서 메밀과 비슷한 열매를 맺는 잡초가 고마리입니다. 산행 중 계곡 근처에서 메밀밭처럼 펼쳐진 고마리 무리를 자주 만나게 되는 때입니다. 핑크색의 별사탕 같은 귀여운 꽃을 피웁니다. 흰색과 대비되는 핑크색이 아주 아름답고 강렬합니다. 작은 꽃이 열 개, 스무 개 모여서 하나의 꽃처럼 보입니다. 살펴보면 꽃이 피어 있는 것이 몇 개 되지 않습니다. 그걸로는 벌레를 불러 모으기가 부족한 듯합니다. 그래서 오래 꽃이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순서에 따라 계속 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고마리 줄기에는 아래쪽으로 굽은 날카로운 가시가 나 있습니다. 이 가시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때론 큰 동물에 붙어 활동 범위를 넓혀가기도 합니다. 잎은 화살촉처럼, 창검처럼 특이하게 생겼습니다. 가운데 큰 조각은 달걀처럼 생겼고 끝이 뾰족합니다.

보이는 꽃이 모두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꽃도 있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땅속에 있습니다. 꽃을 피우는 것은 벌레를 불러 가루받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땅속까지 고마리를 찾아오는 벌레가 있을까요? 그런 벌레는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꽃가루로 가루받이합니다. 제비꽃에서도 본 적이 있는 이런 꽃들을 페쇄화(閉鎖花)라고 부릅니다. 고마리는 한해살이라서 부모는 그 해 시들어 죽어 버립니다. 그 뒤를 잇는 것이 바로 폐쇄화로 생긴 씨앗입니다. 이 씨앗은 부모가 살았던 바로 그 땅에서 대를 이어갑니다.

그런데 땅 위 꽃에서 생간 씨앗은 다릅니다. 부모가 살던 땅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합니다. 고마리 열매는 물새가 좋아합니다. 물새의 배속에 들어간 씨앗은 견고하고 딱딱해서 그대로 배설된 채 새로운 곳에서 뿌리를 내려 세력을 확대합니다. 어떤 자식은 자기를 이어 그 땅에 살게 하고 어떤 자식은 넓은 세상으로 나가 성공하도록 만드는 고마리의 자식 사랑은 사람과 별로 다를 것이 없어 보입니다.

고마리의 메밀과 비슷한 검은색 열매는 구황식물로 재배된 적도 있습니다. 어려운 시절 고마리 열매로 메밀수제비 비슷한 음식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사람에게도, 소의 먹이로도 도움이 됐던 식물입니다. 고마리의 큰 역할은 또 있습니다. 물가나 습지에 살면서 물을 맑고 깨끗하게 만들어줍니다. 고마리는 흰 뿌리로 주변의 오염물질을 빨아드립니다. 상류에서 내려오는 지저분한 물을 깨끗하게 만들면서 물고기에게 피난처나 산란장소를 제공합니다. 그 점에서는 하는 일이 갈대와 비슷합니다.

고마리라는 이름과 관련해 여러 설이 있습니다. 잎 모양이 소 얼굴에 덧씌우는 고만이를 닮아서 붙여졌다는 설과 ‘고에 사는 만이’, 즉 고랑에서 사는 생명체의 의미가 담겼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보다는 사람에게도 주변 생명에게도 이로운 풀이어서 ‘고마우리’라는 의미를 담아 그렇게 불렀다고 이해하는 게 훨씬 더 그럴듯해 보입니다.

땅에서 하늘로 가 봅니다. 주말 동안 가을비가 지나가면 다음 주에는 더 맑고 높아진 가을 하늘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지가 씻겨 내려간 비 온 뒤 가을하늘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초가을의 푸른 하늘을 그린 박두진 시인의 시 ‘하늘’은 사람들에게 하늘을 닮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 만들어 줍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긍정적인 자연을 심어준 박두진 시인의 시는 노래가 돼 사람들에게 익숙해진 것들이 많습니다. ‘해’, ‘꽃구름 속에’ ‘하늘’ 등이 그렇습니다.

그 가운데 ‘하늘’은 가수 서유석이 곡을 붙여 1972년에 양희은과 듀엣으로 불렀던 노래입니다. 해방둥이인 서유석은 올해 일흔여덟 살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하늘과 같은 마음으로 노래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거려줍니다. 지난해에는 특히 작은 콘서트를 여러 차례 열어 코로나로 지친 사람들에게 위안을 줬습니다. 올가을에도 열심히 사람들을 만나고 기분 좋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서유석이 환갑이었던 18년 전 2005년 불렀던 ‘하늘’을 만나봅니다.

만나서 27년 동안 호흡을 잘 맞춰가며 가을하늘처럼 맑고 푸르른 듀오 활동을 이어가는 ‘유리 상자’입니다. 이세준과 박승화는 3년 전 자신들의 이미지와도 잘 맞는 힐링 송 ‘가을 하늘’을 내놓았습니다. 이세준이 노랫말을 쓰고 박승화가 곡을 붙였습니다. ‘가을하늘이 좋아라. 그냥 봐도 좋더라’

파란 가을 하늘 속에 담은 소소한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행복하고 따듯한 가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실었습니다. 여기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은 소망도 담았습니다. 한결같은 하모니로 좋은 노래와 좋은 관계를 이어가는 하늘을 닮은 듀오 유리 상자입니다.

유영석은 가수로 출발했지만 지금은 방송패널, 작곡가, 프로듀서, 교수로 더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예능프로그램 ‘복면가왕 ’패널로 가장 익숙해져 있는 인물입니다. 유영석은 1988년에 팝 밴드 ‘푸른 하늘’을 출범시킵니다. 맑고 푸른 하늘에서 잃어버린 꿈을 찾아보자는 게 이 그룹을 만든 취지였습니다. 대중음악사에서 영향력 있었던 동아기획이 출범시킨 밴드였습니다.

처음에는 5인조로 나중엔 2인조로 1994년까지 활동했습니다. 푸른 하늘이 낸 6장의 앨범 가운데 단 한 곡을 제외하고는 모두 유영석이 작곡한 작품으로 채워질 만큼 작곡가 유영석의 활약이 돋보였습니다. 그 여러 작품 가운데 밴드 푸른 하늘의 시그니처 송과도 같은 ‘푸른 하늘’을 만나봅니다.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등 가을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밝고 유쾌한 분위기의 노래입니다. ‘ 지금 50대 후반인 유영석의 풋풋한 20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을 하늘이라고 마냥 맑고 높고 푸른 것은 아닙니다. 요 며칠처럼 흐리기도 하고 비가 내려서 희뿌옇기도 합니다. 그런 하늘은 그런 하늘대로 전해오는 메시지가 있나 봅니다. ’동물원‘의 김창기는 1988년 연대의대 본과 3학년 2학기 시험을 앞둔 전날 밤, 창문 밖에 비 뿌리는 흐린 날씨를 보고 책을 덮습니다. 그리고 잊혀져 간 꿈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노래로 만듭니다. ’흐란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입니다. 이 노래는 당시 동물원 보컬로 활동했던 김광석이 불렀습니다. 이후 1993년 김광석이 솔로 앨범에 담으면서 널리 알려졌습니다.

송 라이터 김창기와 명품 보컬 김광석이 만나 탄생한 이 명곡은 후반부 김광석의 샤우팅이 멋지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1995년 10월 28일 김광석이 KBS 이문세 쇼에 출연해 이 노래를 부릅니다. 그가 이 세상에서 보낸 마지막 가을에 부른 노래입니다. 김광석은 이 노래를 부른 뒤 두 달 여드레 후인 1996년 1월 6일 서른두 살로 세상과 이별하고 얼어붙은 겨울 하늘로 떠나게 됩니다.

6년 전인 2017년 故 김광석과 그의 노래를 추억하고 기리는 창작 뮤지컬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 여름, 동물원’입니다. 그룹 동물원의 멤버이자 정신과 의사인 김창기가 절친인 故 김광석의 기일을 맞아 추억 가득한 연습실을 찾으며 시작되는 뮤지컬입니다. 이 뮤지컬에 출연했던 주역들이 영원히 서른두 살로 기억되는 김광석을 생각하며 부르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입니다. 가수 홍경민과 최승렬, 이세준과 뮤지컬 배우 윤희석과 임진웅이 추모의 마음을 담아 꾸미는 무대는 2017년 10월 28일, 김광석이 ‘이문세 쇼’에서 이 노래를 불렀던 22년 후 같은 날에 펼쳐졌습니다.

김광석을 생각하면 흐린 가을 하늘이 유별나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원래의 가을하늘은 밝고 맑은 기운이 넘치는 희망의 파란 하늘입니다. 그 하늘을 열고 새로운 날을 시작해보겠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노래로 마무리합니다. 포레스텔라가 부르는 ‘The Sky & the Dawn & the Sun’(하늘/새벽/태양)입니다.

‘You Raise Me Up’을 작사했던 아일랜드 작가 Brendan Graham의 노랫말에는 역시 밝은 기운과 희망이 넘칩니다. 작곡은 켈틱우먼의 음악감독 David Downes가 하고 켈틱우먼이 불렀던 곡을 포레스텔라의 멋진 화음으로 새롭게 커버합니다. 어둠의 기운을 걷어 내고 파란 하늘을 열어가는 희망의 노래입니다.

올가을에는 안성맞춤랜드 안에 있는 ‘박두진 문학관’을 한번 다녀와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안성은 혜산(兮山) 박두진 선생이 태어난 곳이자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안성맞춤랜드 박두진 문학관은 특히 뒤에 이고 선 하늘이 유난히 파랗게 보이는 곳입니다.

이 가을 거기에서 시인 박두진의 삶과 시를 한번 되새겨 보면 해와 하늘을 닮은 안분지족(安分知足)의 배움을 얻을지도 모릅니다. 노래로 듣는 그의 시도 덤으로 만날 수 있습니다. 문학의 향기에 젖어 마시는 커피 한잔이 오랜 기억으로 남는 안성맞춤의 가을 나들이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배석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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